제목매일-'서가에서' 신재기교수
- 작성자
- 이미경
- 작성일
- 2004/08/10
- 조회수
- 1899
매일신문 2004 08 - 06
'서가에서'-피서와 독서
한여름이다.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모두들 시원한 바다나 깊은 계곡을 찾는다. 이른바 휴가철이다. 휴가 때 피서를 위해 집을 떠나면서 챙기는 것 중에 하나가 아마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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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계곡물에 발 담그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는 사람을 보노라면 여유와 운치를 느낄 수 있다. 풍성한 먹거리를 준비해 와서 여럿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도 풍요로워 보여 그렇게 흉하지 않다. 하지만 피서지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만큼 한가롭고 품위 있는 것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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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에서 오는 모든 번민을 벗어 던지고 책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피서일지 모른다. 집 밖으로 나가 피서지에서 읽을 만한 책은 아마도 그 내용이 흥미롭고 가벼운 것이 제격일 것이다. 물론 모든 책이 저자의 생각이 진지하게 녹아 있을진대 어찌 가벼운 책이 따로 있겠는가만, 전문서나 깊은 철학 및 사상에 관한 것보다는 감성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문학작품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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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도 좋고 한 권의 시집과 수필집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러한 책들을 다 읽고 꼭 무엇을 얻고 배워야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독서 과정에서 작가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교차하면서 스쳐가는 생각과 느낌들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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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머리 속에 차곡차곡 쌓을 필요는 없다. 모든 것들이 휘발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좋다. 벌써 책을 있는 그 과정에 수많은 사고와 정서들이 우리의 마음 속에 용해되지 않았겠는가? 목적을 가지는 독서는 노역과 다를 바 없다. 피서지에서 읽는 독서는 자유와 해방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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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진정으로 피서를 위한 독서는 치열한 사고와 판단력이 요구되는 무거운 독서일 수도 있다. 이열치열의 전략이다. 박경리의 <토지>와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같은 대하소설을 읽을 수 있는 기회는 이 여름 휴가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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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읽는 데에는 엄청난 인내심이 요구된다. 그 인내심은 어떤 더위도 물리칠 수 있다. 다 읽지 못한 채 내 서가에 오랫동안 꽂혀있는 번역판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은 요란한 매미소리와 함께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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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기(경일대 미디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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