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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본 KIU

제목매일- 사진작가 석재현

작성자
이미경
작성일
2005/04/06
조회수
1151
매일신문 2005 04 04 [최미화가 만난 사람] 사진작가 석재현씨 렌즈에 담은‘인간사랑’ 사진작가 석재현. 경일대 사진영상학부에서 포토저널리즘을 강의하며 뉴욕타임스(NYT) 프리랜서로 뛰기도 하는 그는 중국내 북한동포의 탈출과정을 다큐로 찍다가 체포, 그곳에서 14개월간 수인(囚人)생활을 했다. ◆ 위기의 동포를 구할 수만 있다면 또다시…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북한동포의 탈출을 돕는 행위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러나 막상 일이 터지고 있는 중국에서는 법으로 엄금하는 현실에 저촉, 무려 1년2개월10일(2003년 1월 19일~2004년 3월 29일)을 대륙의 감옥에 갇혀 살았던 석씨는 “북한 동포들이 얼마나 위험하게 엑소더스를 감행하는지 알릴 수만 있다면 제 일신상의 안위가 문제겠습니까”고 잘라말한다. 영혼의 자유를 사랑하는 예술가이자 철저하게 현장을 지키는 프로작가이기에 이국땅 옥방에서 치른 고통을 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으로 승화시켰다. 어쩌면 위기에서 흔들리지 않고 큰일을 대범하게 치러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경륜이 또하나의 마음의 나이테가 되어 더 굵고 선명하게 그려졌는지도 모른다. “또다시 그런 제안이 들어온다면 다시 한번 그들을 돕고, 렌즈에 담기 위해 현장에 가야죠. 그때는 더 잘해야죠. 지난번에는 어떻든 저를 포함해서 40명이나 잡혔거든요.” ◆ 뉴욕타임스에 아시아의 인간 군상(群像) 담아 미국 오하이오대에서 사진공부를 한 석씨는 2000년 베르프낭에서 전세계 사진가, 에이전시, 에디터 등이 모이는 포토저널리즘 전시회에 참여했다가 뉴욕타임스 에디터를 만나,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2000년 11월)부터 한국 일본 중국은 물론 몽골 사이판 괌 필리핀까지 포함하는 범아시아권의 인물과 관련된 특집 기사 (human interest)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피처 스토리(feature story) 담당자가 됐다. 피처 스토리 담당자로서 뉴욕타임스에 소개한 고령 대창 양로원의 김장생 할아버지 부부 얘기는 사할린에 강제 이주돼 40~50년 이상 살았던 김씨 내외에 대한 단순 소개를 뛰어넘어 한국의 역사적 아픔까지 살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북한 내 인권유린 기사, 탈북한 국군포로 특집도 다뤘다. 탈북자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 대규모 탈북 다큐를 찍는게 어때요? “뉴욕타임스에서 한국의 누구를 만나고 싶다면 코디네이터하고, 북한 동포를 돕는 활동가를 접하게 되고 그러면서 탈북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석씨는 탈북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겪지만 특히 여성 탈북자의 고통과 인권유린 상황은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전한다. "지금 탈북을 원하는 사람이 대개 3만 명 내지 5만 명이라고 보지만 누군가는 그 열배 이상이라고 할 정도로 정확한 규모를 모릅니다." 사실 탈북자 문제는 정확한 규모나 실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중국, 북한의 입장이 상이하다. 북한의 입장을 외면할 수 없는 중국, 탈북자를 돕는 국내외 지원단체, 우리나라가 IMF를 조기졸업하는 힘을 제공했다고 할 정도로 커져버린 한-중 교역량. “떠나기 이틀 전에 제의가 왔습니다. 동행 탈북 다큐를 찍지 않겠느냐고.” ◆ 자유의 보트로 대규모 탈북 감행 “처음에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자유를 찾아 망망대해에 한조각 배를 띄운 동남아시아의 ‘보트 피플'처럼 배를 이용한 대규모 탈북을 감행한다고 했다. “물론 중국법에는 위배되는 줄 알지요. 그러나 탈북은 진행되고 있고, 막상 배에서 성공적으로 내린다고 해도 나는 어떻게 되나, 모든 게 막막했습니다.” 어디 내놓고 물을 데도 없었다. 이미 ‘서울 트레인’이라는 영화에서도 봤듯이 일본 작가들은 국경을 넘어오는 탈북과정을 찍기도 하고, 북한에 작가를 들여보내서 상당한 성과를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과 동행해서 다큐를 찍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 동료 죄수들 굶기는 바람에 12일째 단식 풀어 일단 중국 연길로 가서 연길에서 기차를 타고, 다롄으로 갔다가 다시 산둥으로 오는 배를 타는 모든 과정을 렌즈에 담았다. “산둥성에 도착하기 직전, 누군가의 밀고에 의해 배에 탄 채 체포됐어요.” 40여 명이 현장에서 잡혔다. 그때까지 탈북규모 중 가장 컸던 터라 국내외로 파장이 번졌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깊고 깊은 심동(深冬)의 얼음같이 추운 빙한(氷寒). 온기 한점 없는 북방의 동장군이 사정없이 후려치는 감방에서 석씨는 단식에 들어갔다. 단식 11일째, 동료 죄수들에게 밥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한족 친구 4명을 살인한 죄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27세 조선족을 포함해서 상처난 청춘을 푸른 수의에 감싸고 있는 끝동네 친구들을 두끼째 굶기는 걸 보고, 할 수 없이 단식을 풀었다. ◆ 벽이 도사리는 옥에서 껍질 벗고 사귄 친구들 꿈에서도 거대한 벽(높이 7m)이 도사리고 있는 옥살이를 하면서 석씨는 그곳 죄수들과 죄명, 국적, 형기, 언어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고, 서로 본사람으로 만나 의지하고 위로하는 판이한 삶을 경험하기도 했다. “2명의 중국 변호사를 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중국 중범죄자들과 같이 14개월을 살았습니다. 그 동안 딱 두 번밖에 면회도 되지 않았어요.” 후진타오를 만난 노무현 대통령이 석씨 문제를 언급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중국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인 꽌시도 통하지 않았다. 사건이 너무 노출됐던 탓이다. 밥은 주먹만한 꽃빵 하나에 돼지기름에 볶은 야채에 물을 넣고 끓인 국물이 전부였다. 외국인이라고 특별대우는 전혀 없었다. 이따금씩 쌀밥이 나오는 게 전부였다. 어느 교도관은 주말밤, 석씨를 불러내 중국말을 가르쳐주며 말했다. "당신 필름 봤는데, 사진 정말 잘 찍었더군." 중국 감옥에서는 꽃 만드는 일을 했다. 일감이 밀릴 때는 새벽 2~3시까지 꽃을 만들었다. ◆ 강원도의 힘을 다큐에 담고 있어 그러던 어느날 감형이 됐다. 석씨에게 봄은 모질게도 더디게 왔다. "석방 이후에 단 한번도 정부로부터 잘 지내느냐는 얘기 한번 들어본 적이 없다"고 섭섭해하는 석씨는 지난해 강원도의 다큐작가로 선정돼 정선 외곽지역에서 전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강원도민들을 찍고 있다. "극단적인 경험이었지만, 참으로 소중합니다. 인생을 크게 본 것 같아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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