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일보]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괴물'
- 작성자
- 장규하
- 작성일
- 2006/08/04
- 조회수
- 714
2006/08/04
괴수를 딛고 선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투혼
칸 영화제의 성과와 언론의 호평을 등에 업고 한국형 괴수 블록버스터의 새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되는 '괴물'이 드디어 전국 620여 개 스크린에서 일제히 개봉되었다.
개봉 첫날의 조조 상영관엔 관람불능석인 맨 앞자리를 빼곤 빈 자리가 없었고, 화면을 응시하는 관객의 눈동자엔 거룩한 팽만감마저 감돌았다.
미 8군으로부터 한강에 유기된 유독성 화학제 프롬알데히드, 한강에서 낚시질하다가 기형 치어를 발견하는 낚시꾼들,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날 괴물의 수중 실루엣을 바라보며 한강에 투신하는 정장 차림의 신사 등 괴수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가 그래왔듯이 영화 도입부의 사소한 설정들은 곧 등장할 '괴물'의 출현 단서로 충실히 작용해 관객들을 무리없이 몰입하게 한다.
이어서 화면엔 '쥬라기 공원'이나 '고질라' 혹은 '킹콩'의 무대였던 미국의 여느 도심 공간 대신 낯익은 한강둔치가 등장하고, 여기서 콘센트식 매점을 운영하는 덜떨어진 일가족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그리곤 머리에 노랑 물감을 들이고 트레이닝복 차림에 거스름 동전을 뺨에 깔며 낮잠을 자다가 손님이 주문한 오징어 다리를 뜯는 무뇌형의 여중생 학부형 강두(송강호), 결정적인 순간에 활시위를 당기지 못하는 집중력 부족의 양궁선수인 남주(배두나), 무능한 형과 가난한 가정에 분노를 느끼는 반항형의 대졸백수 남일(박해일), 그리고 이들의 아버지로, 가난하지만 자식사랑은 누구 못잖은 우리 시대의 궁색한 가장 박희봉(변희봉), 이들 가족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괴물과의 전면전이 펼쳐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요 손녀이며 조카인 현서(고아성)를 괴물에게 빼앗긴 이들에게, 한강 하수구를 아지트로 기상천외의 텀블링 묘기를 선보이며 수륙을 횡행하는 5개의 입을 가진 이 양서류는 더 이상 납량 효과를 자아내는 괴물이기 이전에 반드시 극복해야 할 숙명의 원수일 뿐이다. 괴수의 이색적이고 섬짓한 캐릭터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후, 인간을 대표하는 초우량 영웅을 내세워 절정의 대결모드를 취하는 할리우드식 괴수영화와 달리 ‘괴물’에서 괴수는 가족애로 뭉쳐진 평범한 인간군상을 받쳐주는 배경으로 자리할 뿐이다.
대신 그 빈 자리를 이 시대의 정치사회적 함의를 담은 블랙코미디의 잔영이 메워주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정현 <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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