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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본 KIU

제목[세계일보]"성공 위한 도전, 아줌마라고 못할 것 없죠”

작성자
박희서
작성일
2006/10/12
조회수
624
2006/10/11 “결혼한 뒤 10년이 지나고 보니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에 필요한 무엇인가를 반듯하게 만들어 놓고 싶어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때 결심이 ‘제2의 인생’을 살게 한 겁니다.” 하나 따기도 어렵다는 박사 학위를 두 개나 가진 조명희(51·한국지리정보학회장·사진) 경일대 위성정보공학과 교수는 10일 “결혼(1978년)한 지 5년쯤 지났을 때 시아버지께서 ‘공부를 계속하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하셔서 시작한 공부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학부 때 전공인 지리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어린 남매를 대구의 친정 부모에게 맡기고 85년 경북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후 90년 인공위성의 영상을 활용하는 원격탐사 분야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지리정보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으로는 국내 최초였다.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나로서는 단순히 지리학만을 공부해서는 평범한 교사밖에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교수님과 상의한 뒤 10여년 전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길찾기용 GPS(위치추적 시스템) 분야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92년부터 경북대 등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그는 94년 경일대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해 ‘대구경북 GIS연구회’를 결성했다. 이 연구회는 97년 한국지리정보학회로 발전했다. 한국지리정보학회는 현재 전국 30여개 대학 교수 600여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 교수는 지난해 12월 이 학회 회장에 선출돼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95년 경일대 측지공학과를 중심으로 제자들과 함께 만든 GIS동아리를 8년 뒤 위성정보를 활용한 지리정보 벤처기업(GEO C·I)으로 탈바꿈시켰다. 연구와 야근을 밥먹듯 하는 그에게 ‘가마골 등대’라는 별명이 붙었다. 경일대가 자리 잡은 지역의 옛 지명인 가마골을 훤하게 밝힌다는 뜻이다. “92년은 위성정보기술 연구자로서 삶의 전환점을 맞은 해였어요. 나의 연구 역량과 기술의 무대를 국제적으로 확장했기 때문이죠.” 그는 당시 일본 나고야의 유엔지역개발센터(UNCRD)에서 주최한 ‘라오스 프로젝트’에 응모해 당당히 GIS 전문가로 채용됐다. 이 프로젝트는 GIS를 이용해 라오스 일대에 성행하던 아편 밀재배 현장을 찾아내는 작업으로, 유엔은 라오스에서 밀재배한 아편이 메콩강을 통해 밀반출되자 정확한 루트를 찾기 위해 조 교수를 채용한 것이다. “베트남전 참전 경험 때문인지 시아버지께서 ‘목숨이 위험하다’며 거듭 말리셨어요. 저도 겁이 났지만 위성영상 기술을 현장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향했죠. 아편꽃이 피면 땅의 온도가 다른 곳과 달라지는데 그 현상이 위성영상에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결국 지리정보 시스템에 위성영상을 결합해 아편 재배 지역을 정확하게 찾아냈어요.” 강의를 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위성탐사 분야의 연구가 활발한 일본 도카이(東海)대학으로 유학, 98년 마침내 이 대학에서 GIS 관련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로 돌아온 후 조 교수가 가장 관심을 쏟은 분야는 GIS와 관련한 인재 확보였다. 학부를 마친 학생들이 대부분 취업에 눈을 돌리자 그는 연구용역으로 따낸 자금과 개인 돈을 합쳐 장학금을 마련했다. 학생들이 마음놓고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실력을 쌓게 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GEO C·I에 입사한 직원들도 가능한 한 대학원 공부를 하도록 적극 권했다. 그가 최근 5년 동안 제자와 직원의 대학원 학비로 내놓은 돈만 1억3000여만원에 이른다. 조 교수는 “위성지리정보는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신개념 지도”라며 “지리정보를 활용한 산업을 발전시키고 이 산업을 이끌어 나갈 인재를 육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석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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