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일보]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 작성자
- 장규하
- 작성일
- 2007/11/16
- 조회수
- 770
2007/11/16
색, 계
선정성 뛰어넘은 베드신
몸짓 하나하나가 큰 울림
상하이 출신 여류작가 장아이링(張愛玲)의 소설을 대만 출신의 세계적 거장 리안이 영상으로 옮긴 '색, 계(Lust, Caution)'는 문자 그대로 욕정과 금욕의 경계에서 허덕이는 인간들을 모사(模寫)한 애뜻하고도 짜릿한 견문록이다. 욕망을 의미하는 색(色)과 신중을 의미하는 계(戒)를 애펠레이션(appellation;제목)으로 활용하며, 육체로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비극적 고뇌를 고혹적으로 영상화하고 있는 이 영화는 중반부 이후에 등장하는 3번의 파격적 정사신으로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30여년 전, 세상을 경악시켰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이제 바다 건너 중국에서 지극히 동양적 숨결로 새롭게 용트림하는 듯하다.
태평양전쟁 무렵, 일본의 지배하에 처한 홍콩과 상하이를 오가며, 친일인사(정보부 대장) '이(양조위)'를 제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한 여대생 왕치아즈(탕웨이)가 그와 정염(情炎)에 빠져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는 스토리는 다분히 원작자 장아이링의 자전적 체취로 충만하다. 서양문물과 전근대적 이데올로기가 충돌했던 20세기 초반, 상하이에서 태어나고 자라, 전통과 제도의 굴레 속에 격변기를 살았던 그녀는 실제로 친일 왕정 웨이 괴뢰정권의 선전부 차장 후란청과 결혼했다. 당시 남편이 귀띔해준 '딩모춘 암살기도 사건'을 소재로 창작했다는 이 소설의 영상화를 책임진 멕시코 촬영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의 탄복할 만한 카메라 워크와 비극적 열정을 서정적 선율에 담은 프랑스 작곡가 알렉산드로 데스폴라의 테마음악은 파토스적 견인력을 제고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영화를 돋보이게 한 건 리안 감독의 탁월한 심미안과 감수성이다. '사랑과 고통은 공존한다'는 그의 진중한 철학을 영화적 메시지로 가꾸기 위해 양조위와 탕웨이가 펼쳤던 뜨거운 베드신은 단지 관능적인 색의 향연에 그치지 않고 보다 큰 울림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와 '엠마누엘 부인'을 거쳐 마침내 '색, 계'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선정적이고 육감적인 에로티시즘의 수위를 사실적인 행위와 섬세한 감정의 묘사가 돋보이는 영상혼으로 갈무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사랑과 섹스를 초월한, 깊이있고 풍요로운 몸짓으로 기억되기에 족하다.
윤정헌 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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