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벤처기업 (주)지오씨엔아이 CEO 조명희 경일대 교수
- 작성자
- 이언경
- 작성일
- 2008/12/22
- 조회수
- 1160
[매일신문] 2008/12/20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소녀가 박사학위 2개를 보유한 대학교수이자 벤처기업 CEO로 변신한 이야기. 주인공은 연간 매출액 40억원대의 벤처기업 ㈜지오씨엔아이(Geo C&I) 대표이사 조명희(53·경일대 위성정보공학과) 교수다. 영남대에 위치한 경북테크노파크내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한창 직원과 함께 대구 신천을 촬영한 항공사진을 화면에 띄워놓고 토론 중이었다.
◆경북지역 모든 작물의 재배면적과 작황 예측 가능
-항공사진과 위성사진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습니까?
"항공기로 촬영한 신천 사진입니다. 하천관리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기본 자료인 셈이죠. 15㎝ 크기의 물체 식별이 가능할 만큼 정밀합니다. 위성사진의 경우, 아리랑2호만 해도 685㎞ 높이에서 찍는데도 지상에서 1m 크기 물체 식별이 가능합니다.
-항공사진이나 위성사진은 어떤 경로를 통해 입수합니까?
항공사진은 국내에 관련업체 12곳이 있어서 주문하면 됩니다. 위성은 전세계 3천여개가 있는데 반은 통신위성이고 나머지는 지표탐사위성이죠. 사진 품질에 따라 가격도 달라집니다. 제가 1982년 석사학위 논문을 쓸 때만 해도 해상도가 80m였는데, 현재는 미국 지오아이 위성이 보내오는 해상도 40㎝짜리가 가장 뛰어납니다. '구글 어스'로 유명한 퀵버드는 상용위성인데 해상도가 60㎝입니다. 이런 위성들이 24시간 찍은 사진을 지상국에서 보관하는데, 이를 검색해서 필요한 부분을 주문하면 됩니다. 퀵버드 위성사진의 경우, 11×11㎞ 촬영시 700만원을 줘야 하고 주문 촬영하면 1천만원 정도가 듭니다. 특정 지역 및 시기의 사진이 구름 때문에 화질이 나쁠 경우에는 따로 주문을 해야 합니다. 이에 비해 아리랑2호는 부가세 포함해서 15×15㎞에 50만원입니다
-산불 조기진화 및 예방하는데도 위성사진이 쓰입니까?
"위성으로 구현한 현장 정보와 감시카메라 정보를 결합하면 실시간 대응이 가능합니다. 우리 회사에서 산림과학원과 함께 개발한 '산불대응 현장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죠. 예전에는 헬기에 카메라를 장착한 뒤 GPS로 실기간 위치를 추적했습니다. 그런데 지상 진화대는 산 속에 들어가면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요. 무전기로 통화를 하는데 현장 상황을 모르니 답답하죠. 지금은 위성영상 정보가 들어있는 모바일PC를 들고 다닙니다. 대원 각자가 자신의 위치도 알고, 지휘본부도 지상 진화대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효율적으로 산불을 진압할 수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바람 방향이나 필요 인원, 구호품도 현장의 대원이 모바일PC에 입력하면 바로 지휘본부로 정보가 날아옵니다. 지난 3월 모의 테스트도 거쳤고, 외국에 수출할 계획도 있습니다."
-하천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범람을 막는데에도 위성사진이 쓰인다는데?
"제가 하천이용과 관련해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관청에서 주는 자료라고는 지도 한 장 달랑 복사해 주는 게 전부입니다. 지금까지 정비계획을 세울 때에도 그랬습니다. 종이도면만 갖고 정비를 한 거죠. 식생이 어떻게 되고 수면은 어디까지 올라오고, 주변 상황은 어떤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얼굴도 모르는 환경부 담당 국장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이게 계기가 돼서 안양천을 대상으로 3차원 하천지형정보를 구축했죠. 안양천 32㎞를 해상도 10㎝짜리 정밀사진을 바탕으로 3차원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때마침 안양천 둑이 터졌는데, 우리가 모의실험한 것과 딱 맞아떨어진 겁니다. 침수지역이 일치한 거죠. 미리 알았더라면 해당 지역 둑을 보강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신천 및 금호강 외에 최근 국토해양부에서 4대 강 정비계획과 관련한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위성을 통해 농업 생산량을 예측하기도 한다는데?
"우리도 올해부터 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경북농업기술원과 3년간 사업을 하게 됩니다. 외국의 경우, 랜샛 위성을 통해 밀 수확량 등의 예측이 가능합니다. 심지어 해상도 30m짜리 영상으로도 이런 분석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워낙 필지가 오밀조밀하다 보니 해상도가 떨어지면 이런 분석이 안 되죠. 그렇다고 외국 영상을 사오려니 비용이 너무 비싸고. 다행히 아리랑2호 덕분에 이런 작업이 가능해졌습니다. 위성사진을 찍으면 전체 작물별 재배면적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작물이나 그해 작황에 따라 색깔이 조금씩 다릅니다. 가령 군사작전에서 수풀로 탱크나 병사를 위장하지만 적외선 위성사진에는 적나라하게 다 드러납니다. 심지어 사막 모래 속에 숨겨둔 물체도 찾아낼 정도입니다. 올해는 1차연도로 경주와 영양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어떤 색깔은 어느 작물이고, 또 색깔의 진하기가 어느 정도일 때 작황이 어떻다는 자료를 찾고 나면 이후 수확량 예측도 얼마든지 가능해집니다."
◆경북대 의과대학장 아버지와 해병대 사령관 시아버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난 뒤에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는데?
"경북대 지리학과 73학번이에요. 대학 졸업후 1년간 교사로 근무하다가 서울로 시집갔죠. 1978년에 중매결혼을 했는데, 시아버지가 해병대 사령관(중장)을 지내셨어요. 시집가니까 사령관 퇴임하고 후임 국방차관으로 내정돼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죠. 그러던 중 10·26사태가 터진 겁니다. 전두환 장군과 사이도 좋지 않았고, 계급도 아래였던 사람에게 찾아가 자리를 달라고 하는 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때 퇴임하신 이후로 어떤 자리에도 연연하지 않으셨어요. 그렇게 사령관직에서 물러난 뒤 남편과 시동생 모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죠. 저도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가서 공부할 계획이었지만 도저히 여건이 안 되더군요. 돈도 많이 들고 아이들 봐줄 사람도 없고. 결국 남편은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고 저는 아이들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죠."
-그렇다고 해도 아이가 있는데 늦깎이 공부를 하기는 쉽잖았을 텐데?
"결혼생활을 4년 하다가 경북대 대학원에 갔죠. 친정 아버지께서 경북대 의대 학장도 역임하셨어요. 아버지께 공부하고 싶다는 편지를 썼더니 제대로 연구를 할 생각이면 시아버지 허락을 받아오라고, 그러면 아이는 봐주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가까스로 공부를 시작했죠. 8년간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습니다. 유엔이 주도하는 '라오스 프로젝트'라는 업무도 맡았는데, 아편 재배로 유명한 라오스의 '골든 트라이앵글'을 가야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와 국교도 없었고, 게릴라가 준동해서 정말 위험한 지역이었어요. 실제로 가보니 곳곳에 시체가 즐비하고, 심지어 아편 거래 경로를 조사하던 일본 공사가 게릴라의 죽창에 찔려 피살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가까스로 프로젝트를 마치고 국내에서 보고서도 발표하고,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특강도 했습니다. 위성사진을 찍으면 아편 재배지역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그런 뒤에 1998년에는 일본 도카이(東海)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GIS 관련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아닌 교수이자 CEO로 만든 계기는 무엇입니까?
"비록 아버지가 의대를 나오셨지만 기초생화학을 전공하셨기 때문에 집안이 넉넉지 않았어요. 당시 월급이 초등학교 교사 월급과 비슷했거든요. 하다 보니 중고교 시절에 바이올린을 했고, 신명여고에서 퍼스트 바이올린까지 맡았죠. 당연히 음대를 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서울에 유학시킬 형편이 도저히 안 된다는 겁니다. 언니도 있었고 동생도 둘이 있었죠. 당시 경북대에는 음대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바이올린의 꿈을 접고 그나마 흥미가 있었던 지리학을 택했던 거죠.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시집을 갔는데, 그런 일(10·26사태)이 벌어진 겁니다. 정말 권력무상이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시아버지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해병대 사령관이었는데, 정권이 바뀐 뒤 자리에서 물러나니까 정말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더군요. 진급시켜 달라며 사과상자에 넣어보낸 돈뭉치를 돌려보낸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니까 아예 아는 척도 않더군요. 권력과 돈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꿈을 찾고 싶었죠."
◆CEO로서 고개는 숙일지언정 근성은 꺾이지 않습니다.
-'지오씨엔아이'를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으며, 살아오면서 좌우명이 있다면?
"위성사진을 활용한 사업분야는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지역뿐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죠. 올해 우리 회사 매출액이 35억~40억원 정도 될 겁니다. 지금까지 용역을 맡아서 매출을 올렸는데, 앞으로 산불방재, 하천관리처럼 특정 분야에 대한 솔루션을 개발해서 해외에 수출할 계획입니다. 이미 추진 중인 부분도 있고요. 여성으로, 교수로서 회사를 운영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제가 사업을 하면서 공무원을 많이 만나는데 제자 중에 감독관도 있습니다. 그 중에 제 과목 학점 날렸던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고개를 숙입니다. 90도로 절합니다. 40여명 식구를 먹여살려야 하잖습니까. 하지만 제가 고개를 숙이는 것은 CEO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고 제 자존심과 야심이 꺾이는 건 아닙니다."
-늦게 퇴근하기로 유명하던데요,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교수인데다 벤처기업을 하고 있으니 연구를 안 할 수가 없죠. 우리 연구실에 석·박사 11명이 있고, 많을 때에는 25명씩 있었어요. 그간 발표한 논문이 260여편에 이릅니다. 예전에 야간 수업이 있으면 오후 10시에 수업을 마치고 학생 상담하고 연구자료를 보고 나면 오전 2, 3시는 금방이죠. 거의 연구실에서 먹고 자고 했어요. 원래 경북대에서 강사로 있었는데, 경일대에 측지공학과가 처음 생겨 교수로 옮겨오게 됐습니다. 설움도 많이 받았죠. 서울대는 외국 알고리즘을 그대로 써도 아무 말이 없고, 경일대는 조금만 실수해도 '경일대라서 그렇지'라는 딱지가 붙어다녔습니다. 실제 연구보다는 지명도로 평가하는 사회적 풍토 때문에 밤샘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대학원생과 함께 작은 실수라도 찾아내고 보다 완벽하게 만들어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 조명희 교수는?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났고 신명여고, 경북대 지리학과(73학번)를 졸업했다. 아이 둘을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늦깎이 공부를 시작해 1990년 박사학위 논문으로는 국내 처음으로 인공위성 영상 활용 관련 연구로 경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94년 경일대에 측지공학과가 생기면서 교수로 부임했다. 1995년 대구경북 GIS(지리정보시스템) 연구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지냈고, 현재 한국지리정보학회장 및 아시아지리정보학회장을 맡고 있다. 1998년 일본 도카이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3년 위성사진 활용기술을 개발하는 벤처기업 '지오씨엔아이'를 만들었다. 매년 수천만원씩 대학 및 대학원생 장학금으로 내고 있으며, 지난 10월에는 '제8회 경북과학기술대상' 여성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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