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인물] 사진작가 조선희
- 작성자
- 이언경
- 작성일
- 2009/01/05
- 조회수
- 1116
[매일신문] 2009/01/03
찍는 순간 만이라도
파사체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포토그래퍼 조선희(37)의 사진 속에서 그들은 늘 다른 눈빛으로 말한다. 그녀는 너무나 잘 알려진 톱스타들의 눈빛 속에서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용기과 좌절, 희망과 절망, 슬픔과 기쁨을 끄집어낸다. 톱클래스 사진작가로 '톱스타들이 가장 사랑하는 포토그래퍼'라는 수식어는 괜히 붙은 게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연예인들만 모델로 삼는다는 생각은 그녀를 한참 모르는 얘기다. 그녀는 패션·광고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 각양의 삶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아낸다.
올 3월부터 경일대 전임교수로 오게 된 그녀를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조아조아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스튜디오 한쪽 면에는 연예인들을 모델로 한 작품 사진이 한면 가득 붙어 있었다. 그녀는 미국 촬영을 갔다가 새벽에야 돌아왔다며 잔뜩 부은 얼굴을 문질렀다. 인터뷰 초반, 다소 딱딱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시원시원하게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스튜디오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목소리도 크다. 거친 말도 간간이 튀어나오고, 귀여운 세살 난 아들 재롱에 인터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그녀는 시종 털털하고 유쾌하게 속내를 털어놨다.
◆새것보다 헌것이 좋아
인터뷰 내내 그녀에게 지인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 주변에는 늘 뭔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제가 뭘 많이 안다고 생각해요. '평범' 하고는 거리가 먼 이 바닥 사람들이 보기엔 전 삶이 다양한 편이니까요." 자신의 색깔을 '보라색'으로 표현할 만큼 그녀는 강렬하면서도 여러 느낌의 삶을 즐긴다. 평범하게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책도 3권이나 냈다. 자주 전시회도 열고, 패션, 광고,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분야의 사진 작업도 병행한다.
'물건이나 사람에 집착하는 편이냐'고 물었다. "사람에 집착을 많이 해요. 대학 1학년 때 짝사랑했던 서클 선배를 완전히 정리하는데 12년이 걸릴 정도였죠. 지금은 많이 고쳤어요." 사랑도 '마른 장작'처럼 뜨겁고 오래한다는 설명. 남편 송경섭(37)씨와 만남도 그랬다. 고객이자 친한 동생의 소개로 만나 주도(酒道)를 얘기하는 그에게 반했고, 2달 만에 동거, 2년 후에야 법적 부부가 됐다. 그녀가 트레이드 마크인 커다란 안경을 고쳐 썼다. 왜 그녀는 얼굴의 반이나 되는 안경을 고집할까. "사진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저를 잘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 쓰기 시작했어요. '전 노랑 머리에 큰 안경을 썼어요' 하면 딱 설명이 되잖아요." 그녀가 가장 아끼는 오렌지색 안경은 벌써 12년이나 썼다. "낡은 게 더 예쁘고 좋아요. 할아버지가 고물장사를 하셔서 뭘 버리질 못하셨어요. 그때는 집안의 오래된 냄새가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오래된 것만 찾고 있네요."
그녀의 작품을 깊숙이 관통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기억이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은 그녀의 잠재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사진으로 체화된다. 14세,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그녀는 차가움과 어둠을 각인했다. "아버지의 관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데 땅 속은 얼마나 춥고 딱딱하고 어둡고 답답할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죽음에 관한 두번째 이미지는 따뜻함과 아련함이다. 3세 때부터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의 죽음. 마지막을 향해 조금씩 가까이 가던 할머니를 바라보며 이별과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에 남는 기억의 따스함을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조선희는 조금 더 밝고 부드러워졌다. 2006년 출산의 경험은 그녀를 뒤바꿔놓았다. 눅눅하고 늪에 빠져드는 듯했던 그녀의 사진은 밝고 세련되게 변했다. "예전에는 외로움과 슬픔이 많이 느껴지는 사진이었다면 지금은 사랑이 더 많이 느껴지는 사진이래요."
◆찰나의 순간에 사랑에 빠지다
어린 시절부터 사진에 찍히는 것보다 찍는 게 더 좋았다. 차렷 자세로 비스듬히 일렬로 서서 찍는 법은 절대 없었다. "소풍을 가서 친구들에게 '나무에 올라가봐' '물구나무를 서 봐' '줄에 매달려' 하면서 특이한 사진을 찍었어요. 그냥 찍는 건 싫었죠." 사진을 평생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대학 1학년 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열차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던 당시, 그녀에게 작업을 하고 있던 한 인부가 눈에 띄었다. '이거다' 싶은 생각에 허겁지겁 카메라를 만지며 셔터를 눌렀다. '찰칵' 거리는 찰나의 소리는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 소리를 평생 듣고 살아도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막상 졸업을 앞두니 앞길이 막막했다.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는 것도 사진밖에 없었다. 그녀의 사진을 본 서클 선배가 '김중만 선생님의 어시스턴트가 되면 어떻겠냐'며 충고했다. 어렵게 알아낸 주소로 남성 누드 사진과 함께 엽서를 보냈다. 한달 뒤 김중만 작가로부터 연락이 왔고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5시간을 기다린 끝에야 만난 스승의 첫마디는 "야구보러 가야 되니까 빨리 보여줘". 그렇게 실수연발 어시스턴트 생활이 시작됐다. 사진 활동을 하며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비주류'라는 따가운 시선이었다. 사진을 전공하지도 않은 어린 여성 사진작가에게 호의적인 곳은 없었다. "그래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한 커트가 필요한 일이면 스무커트씩 해서 갖다줬어요.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었대요." 그때 얻었던 닉네임이 '인물 사진을 잘 찍는 조선희'였다.
◆아직 대표작이 없다
-수입이 얼마나 되세요? 하루에 1천만원 이상 번다고 하던데?
"'하루에 1천만원'이라고 하면 한달에 3억원을 번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매일 촬영을 하는 게 아니예요. 또 잡지 사진은 누구나 커트당 15만원이에요. 많아야 한달에 5, 6번이고요. 그러니 제가 한달에 촬영이 없는 날이 열흘이 넘어요. 그러니 말이 안 되는 얘기지. 1년에 3억원 벌려나?"
-사진을 촬영할 때 '좋아, 좋아'라고 말하기로 유명하잖아요. 의도적인 건가요?
"아니에요. 저는 진짜 좋아서 그러는 거예요. 상대의 기분을 돋워 주려고 하는 거지. 저는 빈말로 예쁘다거나 멋있다는 말을 못해요. 그래서 여자 배우들이 힘들어해요. 진짜 예쁘지 않으면 예쁘다고 안 하거든. 솔직히 그 얘기가 너무 알려지니까 '좋아'라고 하지 않으면 모델들이 불안해 해서, 아니어도 좋다고 말할 때가 있어요."
-가장 아끼는 작품은?
"아직 모르겠어요. 찍을 때는 멋있는 것 같고, 잘 찍은 것 같은데 한달쯤 지나고 보면 실망스럽고 부끄러워요. 아직까지는 대표작 하나를 내라면 없어요 그래도 제가 초기에 찍었던 사진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미숙하지만 따뜻한 느낌이 살아있어요. 1997년 첫 영화 '불새'의 포스터로 썼던 이정재가 담배 피우는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죠. 저를 유명하게 해준 작품이고. 서정주 시인 부부가 손을 잡고 서 있는 사진이랑 이영애가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하며 찍은 사진도 좋아해요."
◆난 대중문화 기록자
-'연예인 프로필 사진 전문'이라느니 '대중스타들의 사진만 찍느냐'는 식의 비아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에 대해 진짜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제가 이정재나 정우성을 찍겠다고 나선 게 아니잖아요. 광고 사진을 찍을 때 그 브랜드의 모델이 그들이고, 포토그래퍼가 저로 정해졌을 뿐이죠. 또 TV 연예프로그램의 화보 촬영 현장에 제가 많이 보이니까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지난해 EBS '시대의 초상'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왜 내가 찍은 사진은 예술 사진으로 평가받지 못할까"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죠?
"언젠가는 예술사진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는데 별의별 얘기를 다 들었어요. 어떤 사람은 헬무트 뉴튼(1920~2004·독일 출신 사진작가)과 저를 비교해서 비판을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도 포르노 사진 작가라는 비난을 받았잖아요. 상업 사진도 감정을 건드리고 메시지가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제가 돈을 받고 사진을 찍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건가요? 돈을 받고 찍지만 광고주의 입맛에만 맞추거나 연예인 등에 업혀 사는 게 아니잖아요.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포토샵의 사용은 어디까지 용인되어야 할까요?
"포토샵은 당연히 써야죠. 필름을 현상하고 프린트할 때도 노출이나 콘트라스트(대비), 색감을 조정하잖아요. 피부를 얼마나 깨끗하게 하느냐, 다리 길이를 어떻게 늘리느냐, 찍은 걸 합성하고 지우느냐는 포토그래퍼가 정해야 하는 몫이에요. 이왕이면 찍을 때 잘 찍어야겠죠. 저는 광고주가 요구를 하면 사진을 찍는 사람의 눈으로 수용을 해요. 너무 인위적으로 고치면 사진적으로 이상해 보이거든요. 포토샵을 쓰더라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건 포토그래퍼의 눈에 있는 것 같아요."
-올해 3월부터 경일대에서 전임교수로 강단에 서게 됐는데, 원래 교수에 대한 꿈이 있었나요?
"그렇진 않고요. 제가 8년 전에 중앙대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제가 어렸고 아는 게 없다는 생각에 왠지 '사기치는 기분'이 들어서 3학기 만에 관뒀어요. 지금은 경험도 더 많이 쌓였고, 책도 3권을 냈으니 재밌을 것 같아요. 또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에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를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저는 학생들이 자신의 색깔과 톤을 정확하게 찾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네 멋대로 찍어라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뭔가요?
"눈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눈에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요. 피사체의 눈빛에 따라 사진의 분위기가 좌우되죠. 또 항상 진심을 담으려고 해요. 피사체에 몰입이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좋은 사진이 한 장도 안 나와요. 그 순간만이라도 피사체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좋은 사진이 나오거든요."
-사진을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주관을 갖고 있어야 돼요. 무엇을 어떻게 어떤 색깔로 찍을 것이고, 사진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멋대로 찍으면 돼요. 자신을 먼저 발견하고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찍어야만 자신만의 사진이 나오죠. 제가 최근 인터넷 카페 동호회에서 사진 심사를 한 적이 있는데 사진들이 다 똑같아서 너무 신기했어요. 그게 문제예요. 잘 찍으면 뭘해 다른 사람이 다 한 건데. 자기가 얘기하는 게 없잖아. 그림자 대칭이나 황금구도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10년 후 조선희는 어떤 사진을 찍고 있을까요?
"좀 더 제 것이 많이 들어가 있는 사진을 찍고 있겠죠. 사람이 변하듯 사진도 변하는 거니까. 예전에는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을 통해서 배우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배우가 가장 배우다울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 조선희는?=1971년 경북 왜관 출생.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 대학 입학 전까지 카메라를 제대로 만져본 적도 없던 그녀는 대학 서클 시절, 철도 인부를 찍던 셔터 소리에 반해 평생 직업으로 결심했다. 졸업 후 김중만 작가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프로 세계에 뛰어들었고, 감수성 있는 포트레이트로 광고·패션계에서 톱클래스 사진작가로 손꼽히고 있다. '엘르' '보그' 'W' '코스모폴리탄' 등의 화보와 LG 사이언, 삼성 애니콜, 나이키, 올림푸스, 지오다노, 현대카드 등의 광고 사진을 맡았다. 비, 이효리, 신화, 원더걸스 등 앨범 재킷과 영화 포스터까지 다양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왜관촌년 조선희, 카메라와 질기게 사랑하기' '조선희 힐링포토' '네멋대로 찍어라' 등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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