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콘텐츠피플] 배우의 페르소나에 호흡을 불어넣는 일-윤예령 교수
- 작성자
- 홍보비서팀
- 작성일
- 2011/06/03
- 조회수
-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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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윤 예 령
<주요 경력> 영화 <은행나무침대>, <쉬리> , <이재수의 난>, <단적비연수>, <자귀모>, <닥터 K>, <몽정기> / 드라마 <드림하이>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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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특수분장의 1인자. 대한민국 영화에 특수분장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고 전파한 윤예령.
그녀의 방은 상당히 을씨년스러웠다. 인터뷰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의 각종 괴기스러운 모형들 때문에 내내 섬뜩하고 오싹함에 어깨를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애정어린 손길로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그녀를 보는 동안, 그 실리콘 덩어리들이 '영화배우'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허락을 받아 잠시 만져본 실리콘 두상의 얼굴은 핏기 도는 사람의 얼굴을 만진 것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녀가 실리콘에 불어넣은 것은 비단 형체만이 아닌 영혼이라도 되는 듯이.
불모지에 일군 소박하고 정직한 시작
국내에서 유일하게 특수분장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경일대학교 교수이자, 역시 국내유일 특수분장 전문학원 '유영분장'의 윤예령 원장을 수식하는 말은 아직도 많다.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윤 원장은 영화 '우담바라', '구로 아리랑'의 히로인이었다. 그러나 신이 그녀의 다른 능력을 간파한 것일까? 연기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그녀는 3년 만에 연기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 미국에서는 특수분장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언젠가 저게 한국에 꼭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당시 한국에는 특수분장은커녕 제대로 된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죠."
그녀는 LA에 있는 세계적인 특수분장 스쿨인 엘레강스 아카데미에서 '메이크업의 신(god)'이라 불리는 딕 스미스에게 지도를 받고 귀국길에 올랐다. "저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었어요. 저 직업이 한국에 꼭 필요할 것이고, 내가 저것으로 한국에서 1등을 하겠다는 욕심과 자신감이 생겼죠." 어떤 영화 한 편에 감흥을 얻어 무작정 영화판으로 뛰어드는 낭만적인 헐리우드 키드가 아닌 오랜 시간에 걸친 관찰과 비전을 바탕으로 택한 길이었기에 그녀는 앞만 바라볼 수 있었다.
영화 특수분장의 명인으로 우뚝 서다
그러나 한국에는 자리를 잡을 시장조차 형성돼 있지 않았다. 1991년 귀국 후, 국내 최초의 특수분장 학원인 <유영분장>을 설립했지만, 영화계에서는 아직도 생소한 영역. 특수분장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일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전직 영화배우라는 이력 역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제가 배우를 하던 시절 아는 감독님이나 지인을 찾아가 부탁을 해 본적이 없어요. 물론 그들 역시 제 실력을 신뢰하지 않았죠. '주연배우였던 사람이 엑스트라의 분장을 할 수 있겠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연극영화과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한 밑공부와 연기자로서의 경력은 일하는 데는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
"작품분석력이나 각종 이론, 그리고 수많은 시나리오와 희곡 공부부터 현장에서 감으로 알게 되는 조명이나 카메라의 기능을 미리 다 알고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죠."
그녀의 고군분투는 학교 선후배관계이기도 한 강제규 감독을 만나면서 비로소 대한민국 영화사에 특수분장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윤예령 특수분장사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작품이 바로 강제규 감독의 데뷔작인 <은행나무침대>인 것.
"강제규 감독은 비주얼 효과나 특수분장 등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시작하면서도 상당히 많은 회의를 거쳤고, 특수분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중요성을 인식해 많은 투자를 해줬죠."
그래서일까. 그녀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은행나무침대>를 꼽는다.
"50편이 넘는 작품 가운데 어느 하나 귀하지 않는 게 있겠어요? 그래도 초기에 고생을 많이 한 작품들이 기억에 많이 남긴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쉬리>도 많은 애착이 갑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모든 스태프가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한 <이재수의 난>이 상당히 아쉬워요."
특수분장사는 아티스트
특수분장사는 '스페셜 메이크업 아티스트(Special MakeUp Artist)'라며 그녀는 '아티스트'란 말에 강세를 준다.
"특수분장에는 창의력, 창작력은 물론 예술적인 감각이 필수입니다. 기능을 배워 단순히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매 영화마다 어떤 이미지를 표현해야 하는지 공부하고 상상하고 연구해야 하죠. 그래서 우리에게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라 '아티스트'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겠죠."
물론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해부학 등 인체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기본이며, 매 작품마다 새로운 공부를 계속한다. 예를 들어 메디컬 영화인 <닥터 K>를 찍을 때는 직접 수술하는 장면을 보고, 의사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배운 후에 작업을 시작한다. 그녀 역시 아직도 새로운 것을 공부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으며, 그녀의 책장에는 해외에서 구해온 각종 특수분장 분야 책들이 즐비하다.
그렇다면 특수분장사로서 어려운 점은 없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주먹구구식 제작이 비일비재하고, 이런 점이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콘티를 수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
"콘티대로 준비해 갔는데, 좌우가 바뀌거나 배경이나 상황이 바뀌거나 카메라의 위치가 바뀌면 상당히 난처할 때가 많아요. 게다가 가끔 현장에서 바로 어떤 것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하죠. 그럴 때가 좀 어려워요. 사실 특수분장은 조명이나 촬영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서로 공조가 돼서 가짜같은 것을 진짜처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요, 그런 것에 대한 이해가 좀 적어서 아쉬워요."
영화 속 0.5초의 스침조차 가장 진실된 모습으로
처음 작업실에 들어왔을 때 으스스한 느낌이 떠올라 어리석은 질문인 줄 알면서도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무섭긴요. 하나하나가 제 소중한 '작품'들인데 전부 애틋하고 사랑스럽죠." 그래서 그녀는 공포영화를 봐도 하나도 무섭지 않다며 웃는다.
특수분장은 배우가 직접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만들어준다. 일종의 영화 속 페르소나인 셈. 이 페르소나가 부자연스러우면 아무리 리얼하게 연기해도, 사람들은 영화의 상황에서 금방 빠져나와 버린다. 그렇기에 그녀의 작업은 항상 실제 일보다 두 세 배의 일을 감수한다. 영화 속 0.5의 스침. 매의 눈을 가진 사람조차도 잡아내지 못할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그 순간 등장하는 하나의 작은 소품을 만들기 위해 그녀는 며칠이고 밤을 지새운다.
"제 작업의 원칙은 어떤 일이건 상대방의 만족을 생각하는 겁니다. '과연 이 사람이 이것을 만족해 할까'라는 의심과 불안이 완벽히 없어지는 순간까지 작품을 계속 고치고 다듬어 나갑니다. 한 개의 작품이 필요한 경우에도 저는 항상 두 개, 세 개를 제작해가서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것을 고르라는 것이죠."
그녀의 이런 고집은 시간적으로도, 비용적으로도 명백한 손해이다. 그러나 영화현장에는 어떤 변수가 있을지 예상할 수 없기에 대비해야 한다. "변수에 대한 대비를 잘못하면 실수로 이어지는데, 영화계는 굉장히 엄격해서 한 번 실수하면 다음의 기회로 이어지지 않죠."
윤예령을 넘어서라
"특수분장사는 학력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직종이에요. 누가 학력을 물어보지도 않죠. 90년 대 초만 해도 이 일은 학력과 무관했기 때문에 학원을 통해 인력을 양성했어요. 물론 살짝 아쉬움도 있었죠. 학원에서는 가르칠 수 없는 다양한 커리큘럼이 아쉽긴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경일대학교에서 특수분장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게 됐다면서 총체적인 인문지식도 같이 배우게 되면 더 전문적이고 나은 특수분장사들이 나올 것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특수분장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문화산업 뿐 아니라 지체장애인을 위한 의료기산업 쪽으로도 진출할 수 있어 전망이 밝다. 게다가 요즘은 애니메트로닉스(Animetronics)라고 해서, 움직이는 더미, 모형을 만드는 작업도 같이 진행하고 있어, 특수분장의 활용영역은 무한대에 가깝다.
"특수분장사가 되려면, 미술적인 재능과 감각은 필수이고, 색채, 입체, 조형 감각 모두 필요합니다. 그리고 영화 현장 스태프로서 그것을 견디기 위해서는 영화나 드라마 자체를 좋아하고 즐겨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버텨낼 수가 없어요. 특수분장을 위한 작품들은 사전에 제작하지만, 그래도 항상 촬영장에 나가 스태프와 함께 몇 날 며칠을 지새면서 현장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죠."
그녀의 꿈은 앞으로 세계에 우리나라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특수분장사를 키워내는 것이다. "전 첫 수업에 들어가면 항상 이 얘기를 합니다. '3년이나 5년 후에 윤예령보다 더 뛰어난 특수분장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시작도 하지 말라'고 말이죠."
곧 촬영장에 가야해서 바쁘다는 그녀와 서둘러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다시금 그 방에 있는 수많은 배우들의 얼굴을 돌아봤다.
처음에 봤던 무서운 가면이 아니라, 20년 동안 오롯하고 정직하게 걸어온 그녀의 자취가 그대로 보였다. 그 작품들이 이제와 다시 보이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 열정과 혁신의 과정이기 때문이 아닐까?
글 정나리 기자 media@cg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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