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문화산책] 욕심-김영숙 디자인학부 교수
- 작성자
- 홍보비서팀
- 작성일
- 2012/08/21
- 조회수
- 995
[영남일보]2012/08/20
절 마당에서 만나는 가장 반가운 것은 풍경(風磬)이다. 산들바람에 뎅그랑 뎅그랑 소리를 낼 듯 말 듯 움직이는, 처마에 달린 물고기 한 마리가 처마 너머의 빈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다. 풍경(風磬)이 풍경(風景)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종종 절에 간다. 어느 절이든 마찬가지지만, 석탑이 마주 선 대웅전 앞마당에는 꽃이 피어 있다. 나리꽃이 있는가 하면, 불두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기도 하다. 그러나 절집을 가장 절집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목탁소리에 간간이 후렴을 넣듯 뎅그랑 뎅그랑 맑은 소리를 울리는 풍경은, 절집 문턱을 넘는 순간 세속의 소리를 미련없이 버리게 하는 것 같다.
뎅그랑~ 뎅그랑~, 욕심을 버렸느냐. 미련을 버렸느냐, 뎅그랑~ 뎅그랑~. 그러면 나는 얼른 다른 생각을 한다. 설혹 그것이 욕심이고 미련이라 하더라도 절대 마음에서 밀어내지 못하고 있는 많은 집착을 떠올리면, 이 세속적인 사람은 결코 절집 마당에서조차 마음이 가벼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든 물건에든 미련을 갖는 한 욕심은 저절로 따라오니 이래저래 탈속은 어렵기만 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예불을 마친 스님이 점심식사를 권한다.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얼른 합장을 하고 밥상에 앉는다. 맛없는 절밥은 없지만, 시원한 물에 말아 장아찌로 먹는 밥은 산해진미와도 비교할 바가 못된다. 이 또한 부처님 은혜라!
굳이 절집 마당에서가 아니라도 욕심을 버리고 사는 삶의 미덕은 아주 클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무욕의 삶을 살 수도 없고, 때로는 욕심이 인류의 삶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좋은 작품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위대한 예술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예술의 현실에도 적용될 듯 싶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좋은 작품에 대한 열망으로 고군분투하는 많은 작가를 보면, 전시장에 걸린 작품의 이면에 있는 땀과 노력이 저절로 느껴진다. 이럴 때 예술가들의 욕심은 결코 탐욕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에는 멀리서 보이지 않는 땀과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절에서 또 풍경이 울린다. 뎅그랑~ 뎅그랑~, 욕심을 버렸느냐. 뎅그랑~뎅그랑~, 미련을 버렸느냐. 나는 속으로 답한다. “세속의 욕심은 버리고, 예술에 대한 미련은 더 가지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김영숙 <경일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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